(2024)
지붕이 달린 집 안에서 먹던
당근 수프의 맛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
시간이 흐르면서 증발하는 섬세한 기억들이 무섭다
투명한 점선으로 이루어진 몸
그 몸을 천천히 감각하며 만져본다
내게는 너무 오래전 떠나버린 이의 형상이 남아있다
아직 부풀어 오르지 않은 매트리스 한 쪽과 납작한 베개
젖은 칫솔과 짧은 머리털로 막혀있는 샤워부스 하수구
말간 당근 수프로 나의 얼굴과 뇌를 씻을 예정이다
사람은 자신의 손에 주어진 것을 간과하기 마련이고
후회라는 영속은 매우 흔하다
목 없는 흰 그림자가 나를 따라온다
내 곁에 누워있던 이는 그 어디에도 없다.